이름은 없지만 그는 황제다
인물탐구 김상화 백산 회장 세계 최고의 인조가죽 제조 … 나이키·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에 납품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인조가죽의 세계적 명품은 한국산….” “이름 없는 황제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고독하지요. 분명히 황제는 황제인데 이름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거고요. 그건 황제 제품만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기도 할 겁니다. 특히 독보적인 기술력과 제품의 우수성을 월등하게 보유하고 있을수록 더 심한 고독감을 느끼겠지요. 국내에서는 품질에 걸맞은 명성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백산이 아마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 친환경 인조가죽으로는 유일하게 평균 2~3년마다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아디다스·나이키·리복 같은 세계적 브랜드에 천연가죽보다 신축성이 뛰어나고 고밀도로 제조된 복합 초극세사 장섬유 인조가죽 페렉스(Felex·제품 특허명)를 100% 공급하는 백산의 김상화 (67)회장. 앞의 ‘황제 얘기’는 그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인조피혁 제조 분야의 황제라는 말은 애널리스트들과 아디다스 등 납품처 관계자들이 머뭇거리지도 않고 결론을 내리듯이 내린 평가다. 한국 사람이 대체로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필자에게는 의외였다. 그러면서 백산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유럽과 미국, 일본,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친환경 무공해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귀띔했다. 독일 아디다스 본사의 자재구입 책임자 조안 앤드슨(48)이 전하는 평가는 단순하면서도 극명하다. “유럽에서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지 않으면 신발, 의류, 소파 등 모든 상품이 제재를 받는다. 백산에서는 2004년 DMF(인체에 유해한 유기용제)가 나오지 않는 무공해 친환경 인공피혁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페렉스는 가격이 다른 제품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공해라는 점과 내구성과 자외선을 차단하는 내광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촉감이 매우 훌륭하고 쾌적하다. 크린노블 제품은 이미 테스트에서 호평을 받았다. 같은 인조피혁이지만 한 단계 높은 페렉스 제품은 올 9월 신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고급신발 소재로 채택되어 있다. 신제품은 내년 3월 전 세계에 시판할 예정이다.” 질 좋은 인조가죽이 일본과 유럽 쪽에서도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느 국가에서 나오느냐는 의미가 없다.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명품 의류 브랜드인 아르마니(Armani)의 소재는 중국에서 나온다. 구치·프라다·루이뷔통 같은 브랜드의 소재를 이탈리아인이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인조가죽의 명품은 백산에서 나오고 있으며,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다. 중국(2개),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백산의 5개 해외생산 거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 일본, 이탈리아, 독일, 멕시코 등 14개 해외시장에서 ‘생산량 대비 판매량’이 93%로 세계 1위다.
2006년 기준 생산출고량(sqm)은 1598만4730㎡로 세계 2위, 매출은 2007년 기준으로 수출 2억1000만 달러(백산 계열사 합계), 내수 900억원 등 연 3억 달러(2988억9300만원)에 이른다. 10년 연속 국내 1위다. 백산이 인조가죽의 대명사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백산 제품에 대한 정보가 입수된 것은 지난 6월. 김상화 회장을 안산의 시화공단 본사에서 어렵게 인터뷰한 것은 7월 17일이었다. 기업인에게 고독하다느니, 외롭다느니 하는 것은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평가다. 김 회장을 보는 사람들은 백산 제품이 인식 부족으로 아직 명품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작 김 회장은 치열한 경쟁에서 고독조차 느낄 시간이 없는 ‘분주한 행동가’였다. 검소한 집무실에서 만난 첫 인상은 표정이 없고 말이 없었다. 남들에겐 고독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흑자가 나도 석 삼자(三), 적자가 나도 석 삼자로, 일직선의 눈썹과 눈, 꽉 다문 입이 관상부터 굵은 석 삼자 형이었다. 소령 예편 후 먹고살기 위해 창업 김 회장은 소파 앞 테이블에 여러 종류의 인조가죽 샘플을 펼쳐 놓고 질문을 기다리는 듯했다. 먼저 백산의 창업 동기부터 궁금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짧지만 부드럽게 씩 웃기만 할 뿐 ‘기업인에게 과거는 중요한 게 아니지요, 미래도 바쁜데…’라고 했다. 김 회장을 오래전부터 지켜봤다는 측근들은 김 회장이 기업을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그동안 부침(浮沈)이 심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기업 성적이 상승 그래프만 그리게 된다면 누구나 하지. 누구나 덤빌 수 없는 게 기업인데,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일희일비해서야 기업가라고 할 수 없지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업 철학이 녹아 있을 것 같은 뜻밖의 몇 가지를 얘기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기업을 일군 재벌 2세도 아니다. 눈 밑에 시퍼런 물감을 칠한 듯이 먹지 못해 화색을 잃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난을 감추기 위해 장교가 돼 수도경비사령부에서 소령으로 예편했다. 다시 먹고살기 위해 기업을 시작할 때, 돈 벌자는 생각보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나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와 직원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우리 회사에는 정년퇴직이 없어요. 해당자는 임금 피크제를 실시합니다. 출근부가 없고, 결근이 없고, 노조가 없고, 재정·신원보증이 없고, 식대가 없습니다. 회사 식당에서 아침부터 밤참까지 무료급식 합니다. 어음 한 장 끊은 적 없고 현금결제 해요. 회사 주식 직원들한테 많이 줬는데 4만원까지 갔던 주식이 어느 날부터 형편없이 떨어지니까 직원들이 빚쟁이가 됐어요. 주식 사느라고 돈을 빌린 사람이 많으니…. 그걸 전부 나눠줄 때 가격으로 내가 다 사들였어요. 직원들을 빚쟁이로 만들어서 되겠어요? 그래서 내 주식이 많아요. 나는 회사하고 직원들밖에 모릅니다.” 그것으로 회사 운영에 대한 얘기는 끝이었다. 거대한 절벽 같은 대기업들이 가로막고 있는 시장을 무너뜨리자면 온갖 풍파와 살벌한 위기가 있었을 텐데도 대기업에 관한 비난은 한마디도 없었고 표정 변화도 없었다. 1984년 10월, 일산 송포동에 있던 닭장 같은 공장(본인 표현)을 사들여 30여 명의 직원을 데리고 m2당 5달러씩 받는 일반 부직포를 생산하면서 창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음 해에 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24년 만에 2억 달러가 넘는 수출을 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섬유를 가공해 공해 없는 우레탄으로 인조가죽을 만들어낸 것은 세계 처음이고, 신기술 개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도 업계 최초다. 물론 인조가죽의 원 소재라 할 수 있는 고밀도의 세계 최대 광폭(240cm) 부직포를 생산하는‘(주)백산 Lintex’사를 3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부산에 설립한 것도 생사를 건 도전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84년부터 지금까지 스웨드(흔히 ‘쎄무’가죽이라고 말한다) 형에서부터 십수 종의 친환경 인공피혁 신제품 개발에만 전념하다 보니 정계, 재계 할 것 없이 특별히 만난 사람도 없고 이 분야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2009년 7월부터 정부가 자동차 내부 인테리어든 가정용 소파와 침대든 유해물질이 포함된 섬유제품과, 진피와 공해가 많은 PVC제품은 환경보호 차원에서 전부 추방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무공해 친환경 제품으로 가야 한다는 건 국민 건강을 위한 세계적인 추세고 우리 정부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겁니다. 그런데 2009년 7월이면 얼마 남았어요? 정신 없이 매달려 왔고 다행히 세계 최첨단 신공법(Water-Jet)으로 초극세사(0.3~0.04d급) 부직포와 천연가죽 기능을 뛰어넘는 인공가죽 생산을 2004년에 성공시켰어요. 그해 업계 최초로 친환경부문 대상을 수상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욕심에 차지 않아 작년에 마침내 고질적인 염색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아주 고밀도인 무공해 페렉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겁니다. 천연가죽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지금은 삼성전자 같은 대형 전자회사들이 칩 생산에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특수 피혁 개발까지 완료하고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김 회장의 얘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김 회장의 세상은 온통 인공피혁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다른 세상은 들어앉을 여백이 없었던 셈이다.

▶신기술 특허인 워터젯 공법으로 컬러를 발현하는 공정.

천연가죽 뛰어넘는 제품 생산 백산은 친환경수지를 개발하는 독보적인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인테리어를 포함한 대규모 납품처를 독점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백산 제품과 비교 분석하는 실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백산 기술진은 우레탄으로 부직포를 만들어내는 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레탄은 공해 없는 수지지만 이를 녹이는 용제 DMF가 공해 물질이다. 백산은 DMF를 사용하지 않고 물의 기포를 이용하는 특수공법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친환경 무공해 인조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신기술 특허다. “3차원 섬유집합체 제조라고도 하지만,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컬러를 발현하는 제조공법도 성공했고, 최첨단 초극세 장섬유 부직포 생산설비(SNS)도 국내에는 백산밖에 없지요. 간단히 말해 공해 성분이 없는 인조가죽을 천연가죽보다 훨씬 싸게 선택할 수 있고, 활용성뿐 아니라 오히려 마모성이나 불이 붙지 않는 난연성, 감성과 질감 등에서 천연가죽이 따라올 수 없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차량 내장재용으로 사용할 경우 인조가죽이 지니는 장점의 비교우위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장마 때 습도는 물론 땀과 물기를 분산시켜 빨리 건조되는 효과가 뛰어났고, 탄력성과 특히 시트로 사용했을 때 복원력은 100%로 나타났다.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접촉 부위의 유연성이 우수하다. 항균, 소취, 방향제, 음이온, 광촉매 등의 기능을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고, 에어컨과 히터를 작동했을 때 차내 온도를 진피보다 빨리 실온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실험 결과 나타났다. 입모(入毛)가 신체 접촉 면적을 줄여 특히 여름철에 쾌적한 승차감을 느끼게 했다. 경량으로 자동차 전체 중량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나타났고 고강력, 저마모로 내구성이 높았을 뿐 아니라 특수 염색으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도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유럽에서는 인조가죽이 어떻게 이렇게 밀도를 올릴 수 있는지 놀랍다고 합니다. 일본도 인조가죽만큼은 몇 년 더 걸려야 우리 제품 수준까지 따라올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환경오염과 유해물질 규제가 다소 느슨하지만 우리는 결코 창업목표를 굽히지 않을 겁니다. 세계 제일을 목표로 천연가죽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집념으로 시작했으니까요.” 김 회장은 국내 시장 석권도 시간 문제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에 따른 다양한 마케팅을 연구하도록 영업부에 지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끝)

2008.08.05

출처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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